텍스트에서 사회텍스트로

         

1970년대에 “텍스트”와 사회텍스트라는 두 용어는 모두 우여곡절 속에 있었음을 알 수 있고, 특히 텍스트란 단어는 계속해서 애매함을 남기고 계속되는 질문을 만들었다. 68 이후 모든 것이 다음을 알려주는 듯 했다. 뒤셰와 젊은 연구가들이 기존의 문학 이론에 사회비평을 편입하려고 노력했고, 초기부터 제도화의 우려를 낳았던 시학이 본격적으로 제도화되면서 점차적으로 사회비평은 시학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뒤셰는 제도의 고찰과 장의 사회학 편에서 새로운 연구파트너들을 생각한다 : “더 제도화된 분석은 문학의 구조로 간주되는 특정한 전체를 고려하는 적합할 수도, 텍스트의 사회분석의 이런 저런 점들을 발전시키는 데도 적합할 있다, 그러나 텍스트의 이론을 변화시키는데는 그렇지 못하다”1).

우리는 다음 질문을 던져본다. 바로 텍스트의 이론을 변화시켜야만 했다면? 그리고 텍스트란 개념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텍스트란 개념에 충분히 대체되는 사회텍스트란 개념에 대한 호소가 제안하는 바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20세기 말에 사회비평이 처한 주변상황은 70, 80년대와는 아주 다르고 아마도 이런 류의 해명이 필요하다. 실제로 뒤셰는 사회비평초기부터 “텍스트”이론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며, “둘 사이 l'entre-deux라는 단어를 내보였다. 그런데 매개라는 모든 문제제기를 포함하는 기초가 되는 요소는 의미심장하게도 연구논문의 노트로 던져졌다2). 모든 것이 마치 시대부터 사회비평에 역동적인 기초들을 제공할 있는 텍스트이론을 창안할 의향이 있었음은 분명한 듯하다. 그래도 역시 시험되기 훨씬 전에 신조어안에 방해가 되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뒤셰는 최근 파트릭 모뤼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 “다른 쪽의 텍스트 이론을 지장 없이 사용했기 때문에 사회비평의 미래를 위태롭게 했다”3). 강조해야 중요한 점은 단지 시대의 어려운 분위기만이 아니라 사회비평쪽의 불명료함 역시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평담화는 결코 결백하지 않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1974 롤랑 바르트는 “텍스트”라는 개념을 규정하려고 시도한다. 단어는 우선적으로 “진부하고 논란이 되는 일종의 가치이다 [...] 달리 말하자면, 현재로서는 텍스트란 단어에 정의를 내리길 기대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정의를 하면 정의에 대한 철학적 비판에 다시 직면하게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텍스트란 개념은 은유적으로만 접근될 있다고 생각한다. 달리 말해서 텍스트 부근에 은유들을 가능한 풍부하게 전해지게 하고, 열거되게 하고, 창안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쥘리아 크리스테바가 언어와 관련해서 텍스트의 개념 정의를 내리는 진척을 보이긴 했지만)4). 뒤셰 역시 분명하게 “텍스트”소시오텍스트 대체하는 것을 망설이는데, 아마도 제대로 이해되지 않을 거라는 걱정과 수정주의라는 비난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일종의 타협이 발견될 것이다. 사실 1970년대 뒤셰는 사회텍스트이론을 이미 구상하고 정의를 내리지만, 상당기간 그의 연구논문에서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옆으로 치워지기까지 하였다. 이후 1980년대 말에 사회텍스트로의 재귀는(이번에는 사회-텍스트socio-texte가 아니라 사회텍스트sociotexte) 그후 새로운 용어의 출현, 소시오그램 수반한다. 바로 그 때부터 “텍스트”는 소시오그램적인 활동이 낳는 것이라고 있으며, 단어는 남아있지만 새로운 의미 안에서이다. 이에 대해 살펴보면 1978 로제 파이욜은 사회비평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그건 그렇고, 텍스트는 무엇인가? 사회비평은 발화의 구조로도, 사회적 존재는 완전히 없어진 추상적으로 개인화된 주체들의 구조화로도 간주하지 않는다. 사회비평은 특히 텍스트의 사회적 존재 양식에 주목한다. 뒤셰는 텍스트들이 사회적인 것을 읽어내고 겪어내게 해주는 방식을 가리키기 위해 사회-텍스트라는 용어를 제안한다”5).

그러나 사회텍스트는 전적으로 사회-텍스트와 합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어는 1976년의 논문 「시커먼 입구멍. 제르미날』안에서의 말, 사회, 혁명」6) 안에서 사용되었는데, 소설과 사회텍스트에 의해 확립된 의사소통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1977년에야 비로소 뒤셰는 그의 사회비평의 계획』안에서 “사회텍스트 그 사회적 존재 방식 안에서 고찰되는 텍스트, 다시 말해 각각의 작품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그 고유의 사회성(사회성이란 어떤 독특한 특성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안에서 고찰되는 텍스트”7)라고 정의한다. “텍스트의 교착으로 제안된 사회텍스트라는 개념”은 앞서 살펴본 “텍스트”가 아니라고 말할 있다. 그래서 사회비평은 “자신에게 고유한 이론을 형성”8)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맥락에서 동반텍스트와 소시오그램이라는 새로운 개념들이 제시되고 정의 내려진다.

Note

1) 인용문은 파트릭 모뤼스가 클로드 뒤셰와 1995년에서 2001년에 걸쳐 수차례의 대담을 기초로 완성된 글들중의 하나이다.   Patrick Maurus, Entretiens sur la sociocritique avec Claude Duchet (1995-2001), avec le concours d’Isabelle Tournier et In-Kyoung Kim, Presse universitaire de Lyon, 2004.

2) 여기서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불필요하지 않다. 거기서 상황의 모든 애매함 들에 대해 아주 잘 강조되었지만, 텍스트의 정의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Claude Duchet, “Pour une socio-critique ou variations sur un incipit”, Littérature, n° 1, février, 1971, p. 5.

3) Entretiens [...], ibid.

 

4) Roland Barthes, “Où/ou va la littérature ?  (avec Maurice Nadeau)”, dans Ecrire... pourquoi ? pour qui ?, Presses universitaires de Grenoble, 1974. (Pour l`émission “Dialogues” de R. Pillaudin, France-Culture, 13 mars 1974.).

 

5) Roger Fayolle, La Critique (nouvelle édition), Armand Colin, 1978, p. 224.

 

6) Claude Duchet, “Le trou des bouches noires. Parole, société, révolution dans Germinal”, Littérature, n° 24, décembre 1976, p. 11-39.

 

7) Claude Duchet, Le projet sociocritique, perspectives sociologiques et idéologiques sur la littérature française au XIXe siècle, thèse de doctorat d’État sur un ensemble de travaux, 4 fascicules en deux volumes, Université de Paris III, I977, p. 9.

 

8) L`article “Sociocritique”, rédigé par Claude Duchet et Isabelle Tournier, dans le Dictionnaire universel des littératures, publié sous la direction de Béatrice Didier, vol. 3, PUF, 1994

 

 

        

 

 

 

 

 

 

 

 

 

 

 

 

 

 

 

 

사회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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